신학생 때 교수 신부님 중에서 강의 내용이 너무 어려운 분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설명을 부탁하곤 했지요. 친구의 설명을 들으니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면 쉬운 내용도 어렵게만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부님은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부러 어렵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나중에 신부가 되어 이 신부님을 우연히 만날 수가 있었고, 이 자리에서 신학생 때 신부님 과목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은사 신부님께서는 두 눈이 커지면서 “왜?”라고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최대한 쉽게 풀이했다고 하시더군요.
신학생들을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어렵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분은 쉽게 말하는 것이 힘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일부러 어렵게 가르치신다고 생각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남에 대해 자신의 잣대를 내세워서 판단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부정적이었을 때는 자신의 반대편에 그 사람을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잣대보다 상대방의 잣대로 바라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자기 잣대만을 내세웠기에 반대했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 아닙니까? 상대방의 잣대, 무엇보다도 주님이라는 기준의 잣대가 우리 안에 필요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잣대를 절대로 내세우지 않았던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은 관습에 따라 파스카 축제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축제가 끝나고 다시 돌아가다가 당시 열두 살이던 예수님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성전에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고 있는 예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보십시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마음이 얼마나 새카맣게 변했겠습니까?
더군다나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화가 날 만도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하신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아직 성모님께서는 이런 권능과 영광을 알아채기는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잣대를 세워서 예수님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이를 성경은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라고 표현합니다.
끝까지 하느님 기준의 잣대를 간직했던 성모님의 마음, 이렇게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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