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1일 [연중 제12 주일]
예레미야 20,10-13
로마 5,12-15
마태오 10,26-33
그리스도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가르침 말씀을 다섯 곳에 모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파견설교’로 마태오 복음 10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열두 제자를 발탁하심,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훈시 말씀, 박해를 각오하라는 말씀, 두려움을 떨치고 신앙을 고백하라는 당부 말씀, 가족이 분열되리라는 말씀, 예수님 추종에 따른 보상.
연중 제12주일에 소개되고 있는 내용은 파견 설교 가운데 ‘두려움을 떨치고 신앙을 고백하라’는 당부 말씀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이승의 생명은 죽일 수 있어도 영원한 생명만은 죽일 수 없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가지 생명을 다 앗아가실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하찮은 미물인 참새의 생명도 아끼고 돌보시는데, 참새보다 훨씬 귀한 제자들을 돌보시지 않을 것 같으냐?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바처럼 하느님 나라와 복음 선포 작업은 결코 만만하거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골적인 박해자들과 냉랭한 반대자들,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된 자들에게 주님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때로 끔찍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초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극복이 가능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마태오 복음 10장 26~27절)
우리 그리스도교는 당당한 대세 종교이지, 캥기는 것이 많아 은밀히 집회를 여는
밀교(密敎)가 절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메시지는 태양처럼 밝은 빛,모든 이의 시선을 끄는 생명이 약동하는 빛 안에서 전해집니다.
우리 집회는 비밀집회도 아니고 지하 운동도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자신들 마음 속에만 깊이 간직하거나 은폐시켜서는 안됩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내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선포되어야 하고 내 삶을 통해 드러나고 증거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기쁜 메시지는 십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손길 한번 닿지 않는 교회 도서관 먼지 낀 영성 서적 안에 잠자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거리에서 울려퍼져야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단히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서야겠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복음의 메시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외쳐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 안에, 자신의 뒤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때로 나는 벌레만도 못하다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데 열심이었는데, 이런 나를 향해 절대 그게 아니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오 복음 10장 30~31절)
정말이지 깜짝 놀랄 일입니다.
나 같은 인간, 하느님 안중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분께서 내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세어두셨답니다.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만큼 하느님께서 내게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고 허물투성이뿐인 내 일생일지라도 그분께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흘러가는 것 같은 내 일상생활, 내 일거수일투족이 그분의 큰 관심사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작은 몸짓 하나 하나라고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소소한 일상생활 전체를 무심코 흘려보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가 아무리 무의미해보이고 암담해보일지라도 더 이상 막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매일의 삶에 보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 하겠습니다.
보다 영양가 있는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심기일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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