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3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열왕기 19,9ㄴ-11.14-21.31-35ㄱ.36
마태오 7,6.12-14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빼앗아 당신 등에 짊어지셨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오 복음 7장 13~14절)
오늘 제게 있어 ‘좁은 문’은 어떤 것을까? 생각해봅니다.
한적하고 안전한 곳에서, 매일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축복의 장소에 살아가면서, 맡겨진 일에 충실하고, 주어진 시간에 기도하고, 기쁘게 살고...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닌 것 같지만, 쉬운 길만도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좁은 문’을 산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살아가는 것! 매일의 작은 의무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충실하게,
정성껏 이행하는 것!
가장 가까이 살아가는 가장 작은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예의를 갖춰 대하는 것!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좁고 가파르고 불편한 길을 불평불만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는 것!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그 역시 주님의 모상이며, 주님으로부터 축복받고 사랑받는 사람임을
기억하고 잘 견뎌내는 것!
그것이 구원과 생명의 좁은 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생명과 구원으로 이르는 길이 좁고, 불편한지, 그래서 그리로 찾아드는 자들이 작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살짝 걱정되는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죄가 하늘을 찌르고, 구원받기에 합당치 않으며, 구원 받을 자격조차 없지만, 주님의 자비는 우리의 죄와 부당함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빼앗아 당신 등에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 세상 모든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의 은총 역시 보편적입니다.
주님께서 지니신 구원의 보편성이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주실 것이며 덮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화 강생으로 인해 구원의 길, 구원의 문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따라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찾는 일이 너무 쉬워졌습니다.
그 누구라도 예수님을 찾고, 그분을 향해 나아가고,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100퍼센트 구원입니다.
오늘 제게 있어 ‘좁은 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묵상해 봅니다.
저희 같은 수도자들에게 ‘좁은 문’은 다름 아닌 공동체 생활입니다.
끝까지 공동체를 떠나지 말고 공동체의 성실한 일원으로 남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는 일입니다.
나의 성장은 반드시 형제의 성장과 동시에 이루어지며, 내가 변해야 형제가 변하기에,
어떻게 해서든 내가 머무르는 이 공동체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솔직히 날이 갈수록 공동생활이 힘들어집니다.
남아있는 길이 지나온 길보다 훨씬 험난하고 힘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때로 형제들을 직면하기도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공동체를 다른 무엇에 앞서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깊이 사랑하며, 이웃과 더불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성화의 길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야말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