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학생의 어머니가 대화를 나눴으면 해서 이루어진 자리였습니다. 도무지 의욕 없이 살아가는 아이의 변화를 위해 대화를 나눠 달라는 것이었지요. 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렸을 때는 뭘 하고 싶었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되고 싶었죠.”라고 말합니다. 곧바로 “그렇다면 의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보았니?”라고 질문을 하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이제까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학생만 그럴까요? 어쩌면 모든 사람이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되고 싶은 모습은 있지만 이를 위한 노력이 없습니다. 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를 원하지만 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사랑 주기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아닐까요? 막연하게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다가 아니라, 그 나라에 가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이 비유 말씀을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어떤 농부도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곳에 씨를 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해서 뿌린 것이라면, 농부의 잘못이 아니라 씨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 잘못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룰 가능성, 그래서 커다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있기에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불가능한 이유만을 찾으면서, 자신의 모습이 변경 불가능한 돌밭이고 가시덤불의 모습처럼 생각합니다. 씨를 뿌리신 주님의 잘못이 아니라, 변하지 못한 우리의 영혼이 잘못입니다.
따라서 막연히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떠올리면서 적극적으로 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에 맞춰서 이 세상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굳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굳은 사람은 거룩한 씨앗을 받아들이지 않고, 더러운 영들을 위해 잘 다져진 길이 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