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사람 자체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언젠가 어떤 분으로부터 다른 누군가에 대한 비난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 나쁜 사람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난하는 대상은 제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과 너무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저와의 관계 안에서는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살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복잡한 것이 싫다며, 상처받기 싫다면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또 관계를 맺지 않아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큰 착각입니다. 이 관계의 단절을 통해 ‘좋은 사람’ 한 명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따지기 전에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나부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서 세상과도 단절되게 되고, 결국 주님과도 단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어지는 것은 ‘나’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그 비결은 사랑하는 이,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이로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투지도 또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께 희망을 두면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셨습니다. 그 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모습을 따르면 됩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이로 또 마음에 드는 이로 살면 됩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면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관계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얻어야 할 것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얻는 것이 있어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얻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에 있을 때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 관계에서 희망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떤 것 같습니까?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은 함께하고 있지 않아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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