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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8-05 조회수 : 350

“신부님! 어떻게 혼자 살 수 있어요?”

많은 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신부 되었을 때부터 들었으니 정말로 이 말을 오랫동안 또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 50이 넘어가니 이 말씀을 잘 하지 않으십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할 것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아무튼,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선 “혼자 살 수 없어요.”라고 답합니다. 법적으로는 혼자 사는 독신으로 보이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사 때 만나는 사람도 있고, 순례 오신 분들과 만남, 그밖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으며 또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절대 살 수 없습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혼자 지내는 것 같지만, 이 역시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연결되어 살고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 그리고 삶의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물건은 제가 샀을 뿐 직접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들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지금 편리한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을 뜻하는 사람인(人)의 한자를 보면, 서로 의지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기본 모습을 포기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미워하고 원망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의지하지도 또 기대지도 않는 비인간의 길을 사는 우리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예레 31,3)라며 다가오시는데, 우리는 그 사랑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요?

가나안 여인이 마귀 들린 자기 딸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 제자들은 이 여인이 소리를 지른다고 아우성칩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도 제자들과 같은 생각인 것처럼, 강아지에 비유하면서 모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이때 가나안 여인의 모습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철저히 주님께 의지하고 기대려는 모습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삶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를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딸이 나았습니다.

배척하고 부정하는 삶은 결코 믿음의 삶도 또 사람의 삶도 아닙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사람과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삶이야 말고 참믿음의 삶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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