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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8-26 조회수 : 365

많은 커플이 자신과 정반대의 타입에 반하고 끌려서 연애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바로 그 다름 때문에 괴로움을 맛볼 가능성이 거의 99%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혼 사유의 대부분은 성격 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신 어떤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이 자매님은 지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책이 싫었고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적이고 책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영원한 반쪽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에 감사하며 결혼했지만, 함께 살아보니 지적이고 책 좋아하는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것만 같고,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고집 센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점 때문에 결혼했지만, 그 다른 점 때문에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사실 사랑은 다른 점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같은 점에서 찾는 것이 아닐까요? 같은 점을 찾아가면서 다른 점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점만 찾았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그 다른 점만 찾다 보니 정작 봐야 할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대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주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특히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주님과 다른 점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물론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열심히 함’으로는 그들을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기도했고, 툭하면 머리에 재를 뿌리고 오랫동안 단식을 했습니다. 남들보다도 더 많은 봉헌을 하는 것도 그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율법의 세부조항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열심함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정작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입장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고, 예수님의 사랑에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이런 경고를 받고서도 전혀 자신의 행실을 고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하나를 이룰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점을 찾고 비판하고 단죄하려고만 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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