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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9-20 조회수 : 305

9월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장 23-26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시대 순교
 
 
오늘 한국 순교자들의 대축일에 순교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순교의 본질이자 핵심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이 부족한 나,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과분하고도 크신 사랑, 해도 해도 너무한 사랑에 대한 우리 인간 측의 응답입니다.
 
시편 작가는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시편 115, 12)
 
이 질문에 대해 즉시 이렇게 응답합니다. 
“구원의 잔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 115, 13) 
 
보십시오. 순교란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행위입니다. 
‘구원의 잔’은 다름 아닌 가장 농축되고 전적인 봉헌, 즉 ‘순교’를 의미합니다.
 
신앙심으로 활활 불타오르던 젊은 시절, 제가 늘 억울해했던 점이 한 하지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제 마음은 순교 영성으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그래서 즉시 어떻게 순교할 수 없나, 늘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럴 기회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순교를 하려고 했지만 시대가 저를 받쳐주지 않은 것을 억울해했습니다.
 
오늘 한국 순교자 대축일에 우리 후손들에게 주어지는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더 이상 신유박해나 기해박해가 없는 오늘 날의 이 시대, 
우리 선조들이 지니셨던 그 놀라운 순교정신, 순교영성을 어떻게 우리 삶 가운데서 실천할까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너무나 간단하더라구요. 
죽을 각오로 현실의 고통에 직면하는 일입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기도하는 일입니다. 
순교자의 마음으로 이웃들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일입니다. 
 
일상의 지루함, 매일의 따분함, 끊임없이 다가오는 사소한 고민거리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빛나는 얼굴로 매일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엄동설한 한가운데서는 이 혹독한 겨울이 언제쯤 지나가려나, 힘겨워하지만 어느새 화사한 봄날이 친구처럼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낙뢰를 동반한 폭우 한 가운데서는 세상이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지만, 기다리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고 푸른 하늘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줍니다. 
 
결국 관건은 기다림입니다. 
이 시대 또 다른 순교의 얼굴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요셉의원 고 선우 경식 원장님께서 생전에 저희 수도자들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수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입니다. 
참고 또 참으십시오. 그리고 또 참고 또 참으십시오.”
 
오늘 우리의 삶이 때로 견딜 수 없이 남루하고 때로 비참하다 할지라도 방법이 없습니다. 
기다리는 수밖에요. 언젠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주실 깜짝 선물을 기대하면서, 언젠가 우리에게 ‘잘 참고 걸어왔다’고 건네주실 표창장 수여식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걸어가는 것이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요, 
이 시대 우리가 순교 영성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오늘 내가 걷는 길이 돌밭길이라 할지라도 걷다보면 분명히 아름다운 들길, 화사한 꽃으로 만발한 꽃길도 만날 것입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줄 시원한 냇가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꿈결조차 그리웠던 옛 친구, 고마운 얼굴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장 18절) 
 
우리가 매일의 고통을 기쁘게 견뎌내는 것 그 자체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참여하는 길이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환난에서 모자라는 부분”(콜로 1장 24절)을 채우는 일입니다.
 
매일 견뎌야 할 몫이 너무나 힘겨울 때 마다 
예수님 위로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코린 1, 7)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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