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갈라티아 1,13-24
루카 10,38-42
주님의 크신 은총으로 인해, 이 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다교 열성 신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신 바오로 사도께서 겪으셨던 고초가 얼마나 컸었던가 하는 것은, 그가 집필한 여러 서한들을 통해서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유다교 입장에서 보면 바오로 사도는 배교자요 배신자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저 그런 신자 중 한 사람이었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바오로는 앞길이 창창하던 유다교 청년 지도자였습니다.
원로들과 지도층 인사들은 율법에 대한 사랑과 유다교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인재 바오로를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오로가 하루아침에 그리스도교로 돌아선 것은 유다교 입장에서 큰 충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오로가 유다교에 끼친 손실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개종 이후 깊은 광야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곳마다 다니면서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수많은 유다인들이 줄줄이 바오로 사도를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으니, 유다 지도층 입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눈엣 가시 같은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바오로 사도가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에서 큰 환영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찾아내고 체포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니던 바오로였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가 하루 아침에 개종을 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 근처를 기웃거리니, 신자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러다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떨칠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배신자라는 낙인과 의심으로 가득찬 눈초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의 강렬한 주님 체험 이후 바오로 사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알아주던 말던, 누가 험담을 하던 뒷담화를 하던 상관하지 않고 묵묵하고 충실하게 복음 선포를 향한 여행길을 계속 걸어갔습니다.
놀라운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기회 닿을 때 마다 회개 이전의 부끄러웠던 모습을 공개석상에서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 사도와 함께 초세기 교회를 이끈 쌍두마차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 중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 정도 되었으면, 충분히 회개의 과정도 거쳤겠다,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에 대해서 굳이 스스로 들춰내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게도 바오로 사도는 틈만 나면 지난 시절 자신이 저절렀던 과오와 어두웠던 시절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갈라티아서 1장 13절)
부끄러운 지난날을 고백할 때 마다 바오로 사도는
늘 이런 식으로 말씀을 마무리 짓습니다.
“이토록 부당하고 부족한 저를 당신의 사도로 선택해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도로 불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크신 은총으로 인해, 이 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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