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설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소설 중에서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훨씬 좋아하고 재미있어합니다. 단편소설은 특별한 사건도 없고 얘기를 하다가 만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에 반해 장편소설은 이야기 중심이고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문득 우리의 삶도 단편소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문제의 해결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등장인물과의 갈등도 흐지부지하게 끝나곤 합니다. 정말로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쓰면 10권을 써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삶이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독자를 이끄는 장편소설 같을까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경험하는 어떤 일에 새로운 사건 몇 가지만 붙었을 뿐입니다. 또 명확한 해결을 원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삶도 바로 나의 삶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편소설의 재미는 세세한 감정들을 바라볼 수 있을 때입니다. 소소한 행복을 체험하는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비로소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결말이 이루어지지 않고, 문제의 해결이 힘들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다면서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행복은 하느님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면 자동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는 이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대단한 결말을 가져오는 행복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행복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배었고 젖을 먹였던 성모님은 분명히 복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성모님의 행복은 단순히 예수님을 배었고, 젖을 먹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기 때문에 행복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행복은 대단한 결말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편소설과 같은 작은 일상 안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서 굳은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어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갈라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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