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국제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아파트에 불이 났습니다. 3층 난간 안쪽에는 시커먼 연기와 새빨간 불꽃이 솟아오릅니다. 그리고 창가에는 3살, 10살 먹은 아이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의 크기는 점점 커져 오고, 구조대는 오지 않는 상황이었지요.
이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있었던 창가 아래에 있던 주민들이 아이들을 향해 “뛰어내려!”를 외치고 있습니다. 뛰어내리면 아래에서 받아주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잠시 뒤에 아이들은 뛰어내렸고, 주민들은 아이를 안전하게 받아서 구조했습니다. 이때 아이를 받아낸 주민 두 명이 팔이 골절되었습니다. 아무리 아이라 해도 3층이면 12m 높이니까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몸이 다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를 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아이들이 뛰어내렸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받아준다고 하지만,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뛰어내렸던 이유는 밑에서 받아주겠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민들도 그 믿음에 응답했습니다. 손목 골절이 되더라도 아이를 구했던 것이지요.
사람도 이러한데 하느님은 어떠실까요? 우리의 믿음에 무조건 커다란 사랑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위협에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주님께 뛰어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표징을 요구합니다. 자신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표징을 계속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듣고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으신 기적 역시 도저히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드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그런 신비한 일을 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표징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향해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라는 표징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된 수난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한다면 절대로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울 수 있는 주님의 표징을 요구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나만 잘 되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나만을 위한 주님을 요구한다면, 주님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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