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하긴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지 않기에 사랑을 더 많이 주려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계속해서 100점짜리 사랑을 전하려는 마음입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아빠가 있었습니다. 자녀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집에 와서는 100점짜리 아빠가 되기 위해 늘 함께 놀아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이가 평소처럼 안아달라며 자신의 품으로 뛰어듭니다. 아이를 안는 순간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짜증이 나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100점짜리 아빠에서 0점 아빠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말합니다. 100점짜리 육아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이런 육아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조금 부족한 듯해도 꾸준한 70점짜리 육아가 아이의 정신 상태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최고의 사랑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꾸준한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는 것도 욕심이 과하게 되면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70점짜리 사랑도 가짜는 아닙니다. 꾸준한 사랑으로 그 점수를 조금씩 높이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종종 “왕년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냉담 중이시더군요. 왕년에 100점짜리 사랑의 활동이 지금 0점짜리 사랑의 활동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의 ‘열 처녀 비유’ 말씀은 최후의 심판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부활과 심판의 날에는 선행에서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믿음과 행동에서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을까 봐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가 어리석은 처녀에게 기름을 나누어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늘 깨어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는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면서도, ‘아직 멀었겠지’라는 생각으로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만 생각하고 앞날에 대비하지 않은 모습을 ‘어리석은 처녀’라는 호칭이 붙게 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단 한 번의 사랑이면 충분할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은 절대 주님의 사랑처럼 완벽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꾸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맞이할 확실한 준비가 될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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