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생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전에 제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나 감명 깊었다고 말하더군요. 특히 신학교 들어가서 본 첫 시험에서 낙제 점수를 맞아 성소에 대해 고민을 했다는 말에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진짜로 진로를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처음 공부하는 철학과 신학이 저에게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학년 때부터 이렇게 공부하기 힘든데, 이 힘든 것을 자그마치 7년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었습니다.
이렇게 힘들었던 순간을 말했을 뿐인데, 이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었나 봅니다. 성공의 순간을 듣는 것보다 고통을 이겨내는 순간을 듣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심리학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겪고 싶지 않은 고통과 시련의 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이 순간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부정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어떤 시간도 쓸모없이 만들지 않으십니다.
세관장이면서 부자였던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사실 이 둘의 만남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에 가는 것을 보고는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실제로 세리는 창녀와 더불어 완전히 타락한 죄인의 본보기였습니다. 이 죄인을 만나는 것도 엄청난 시간 낭비를 한 것인데, 그의 집에까지 들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쓸모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캐오는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알려줍니다. 세관장이라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어리석은 죄를 안고 있는 땅 위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산을 하느님을 위해 내어놓습니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의 모든 재산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모습을 쓸모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재산은 그의 구원을 위해 쓰이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될 그의 재산이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어떤 시간도 쓸모없지 않습니다. 특히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시간은 내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기에 가장 의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