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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2-09 조회수 : 1112

러시아의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정치적 희생양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총살형이 집행되기 바로 직전에 형 집행이 중지되었지요.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그는 다시 살았다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거야. 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거야. 삶은 선물이야. 삶은 행복이야. 인생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어.”

실제로 그는 이 체험 후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분 1초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뒤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 책을 출판할 수가 있었지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이 이 사건 이후에 나왔습니다.

도스토옙스키처럼 극적인 체험이 있어야만 변화될 수 있을까요? 사실 그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절망의 체험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절망 안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이 순간이 극복되는 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절망 안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과 시련이 찾아오면 불평불만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주저앉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린 나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절망과 시련을 이겨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희망을 찾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용기가 되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주님의 멍에는 적당히 무거워 그것을 멘 이들에게 오히려 힘을 북돋아 줍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강을 건너갈 때 머리나 가슴에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간다고 합니다. 강 중간쯤에 세찬 급류가 흐르는데, 무거운 돌로 인해서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짐이 주님의 멍에입니다. 짐이 없으면 편할 것 같지만 더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편할 것 같은 멍에가 편한 것이 되며, 주님께서 주신 모든 짐이 그렇게 무겁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은총을 떠받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떠받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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