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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4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14 조회수 : 1188

12월 14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민수기 24,2-7.15-17

마태오 21,23-27 

 

지금 여러분은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확산 속에 강추위까지 기승을 부리는 대림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소를 찾는 교우들의 얼굴 마다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에서, 큰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간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특별한 재앙과 맞물려 다가온 이런저런 삶의 십자가 앞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웃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오늘 우리에게 존재 자체로 큰 위로요 선물로 다가오는 분이 계시니,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는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1542~1591)이십니다.  

 

그는 독특하게도 십자가를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를 자신의 생애 전체의 주제요 모토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인 요한 앞에 ‘십자가’를 추가했습니다. 

 

놀랍게도 십자가의 요한은 십자가가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십자가 뒤에 아로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여는 열쇠요, 천국과 구원에 이르는 문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진귀한 광맥들을 엄청나게 매장하고 있는 광산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물을 캐기 위해서 먼저 통과해야 하는 작은 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문의 이름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요한이 살아가던 중세 시대는 외적으로는 수도생활의 부흥기처럼 보였습니다.

수많은 입회자들이 수도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대수도원들 안에는 당대 잘 나가던 선남선녀들이 우글우글했습니다.  

 

당시 수도원들은 신앙 뿐이 아니라, 학문이나 문화의 중심센터 역할을 톡톡해 해내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부작용도 뒤따랐습니다.

복음삼덕의 실천이나 깊이 있는 영적 생활, 형제적인 봉사와도 같은 수도생활의 본질적인 측면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생계나 출세의 방편으로 수도원 문을 두드린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수도자들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영성생활은 완전 뒷전이었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순간에 봉착한 교회를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십자가의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가르멜 수도자로서 살아가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그러나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기강과 영성의 결핍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십가가의 요한은 결심합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로구나.’ 평생 후회하며 사느니 더 늦게 전데 다른 것을 찾습니다.

그래서 사제서품은 1년 앞둔 그는 당시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카르투시안회’로 말을 갈아타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십자가의 요한에게 다가온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아빌라의 데레사였습니다.

십자가의 요한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데레사는 가르멜 남녀 수도회의 개혁을 위한 구상을 펼쳐 보이며 그를 설득했습니다. 

 

그때 당시 십자가의 요한은 25세 데레사는 52세였습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자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 데레사는 여자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에 몸 바치기로 약속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이 동료 수도자들에게 개혁의 청사진을 펼쳐 보이며 쇄신작업에 동참을 요청하자 즉시 와 닿는 것이 기득권자들의 극렬한 반대였습니다.

이미 나태해진 수도자들의 펄펄 끓는 분노였습니다. 

 

십가가의 요한을 향한 동료 수도자들의 박해는 끝이 없었습니다.

유괴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눈을 가린 채 햇빛도 들지 않는 수도원 독방에 감금시키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몇 달 동안 죽음이 공포를 느끼며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짐승 같은 세월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수시로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개혁 반대파 수사들 앞으로 끌려 나가 무릎 꿇린 채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개혁을 향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십자가의 요한의 노력 때문인지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당대 교황은 자치권이 있는 지부를 형성하도록 ‘개혁 가르멜 수도회’를 승인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가르멜 수도회 중앙 지도부에 머물면서 수많은 수도회들이 쇄신되고 개혁되는데 큰 힘을 보탰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늘 이 시대 수도회 쇄신을 위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과감하게 추진해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하느님을 향한 강한 신뢰와 용기, 겸손으로 무장한 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 영적인 삶의 가치는 뒷전인체 세상의 허황된 것들에 눈이 멀었던 당대 일부 몰지각한 수도자들을 향한 십자가의 요한의 호소가

마치 오늘 우리 수도자들에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위대한 대상을 찾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불림 받은 동료 수도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목숨 걸고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 것인지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눈이 멀었습니다.

정말 찾아야 할 것은 찾지도 않으면서 엉뚱한 것을 찾아다니는 여러분, 참으로 안타깝고 가련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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