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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17 조회수 : 1330

친구가 비를 맞고 걸어간다면 어떻게 해야 참된 우정을 주는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1) 내 우산을 비 맞는 친구에게 주고 나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


2) 빨리 우산을 사서 비 맞는 친구에게 건넨다.


3) 내 우산을 버리고 친구와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아마 대부분 3번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질문을 보고서 저 역시 3번을 선택했다가, ‘내 우산을 함께 쓴다.’라는 답은 왜 없을까 싶었습니다. 만약 작은 우산이라 둘이 쓰기 힘들어도, 그래서 쫄딱 비에 젖어도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어렵고 힘들 때 함께 할 때만 참된 우정을 주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손해를 인정하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내 것을 먼저 채우고 난 뒤에 남에게 베푸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답이 아닙니다. 참된 우정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원래 함께 살았습니다. 동물들에 비해 약한 존재라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늘 무리를 지어 살았습니다. 혼자 낙오되면 각종 위험에 공격을 받아 죽음으로 이어졌던 공포가 유전자에 기억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롭다’는 ‘죽는다’에서 파생한 언어라고 합니다. 실제로 외로움의 공포와 죽음의 공포는 같은 무게라고 합니다.


참된 우정은 함께입니다. 이것이 서로를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단순히 하느님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즉, 신성만을 가지고서 사람들에게 전지전능하신 당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을 시작하면서 왜 예수님의 족보를 위치시켰을까요? 예수님께서 참인간이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단 한 명도 제외 없는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와 함께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 그리고 당신이 먼저 참된 우정을 주는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마태오 복음은 첫 시작부터 족보를 통해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우리 역시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참된 우정으로 다가오시는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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