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보면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연인의 모습보다 늙은 노부부의 사랑을 볼 때 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보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랑은 좋은 것을 넘어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예전에 보았던 노부부의 사랑을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의 손을 마주 잡고 성당에 나오시는 할아버지이십니다. 성체 영하는 순간에서도 옆에서 도와주며 할머니께서 성체를 실수 없이 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할아버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 같지만 젊었을 때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끝까지 할머니를 간호할 수 있도록 할머니가 먼저 하늘 나라에 가기를 바란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께서 건강하실 때도 두 분의 금술이 너무나 좋았다고 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위한 잔잔한 사랑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누구 한쪽이 아프다고 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힘이 있을 때, 젊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마치는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 사랑의 아름이 널리 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양아버지, 요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음에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지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율법에 따르면, 혼인하기 전에 아기를 가지면 공개 처형을 할 수 있습니다. 돌에 맞아서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의로운 사람’답지 않게 율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남모르게 성모님과 파혼하기로 작정하지요. 왜 그랬을까요? 바로 성모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으로 주님의 천사가 개입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도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초대한다는 것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떤 사랑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주님의 넓은 자리를 만들어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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