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가에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습니다. 이 노점상에는 가격을 알리는 푯말이 다음과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에 300원, 세 개에 천 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러 개를 사면 더 싸야 하는데, 이 가게는 여러 개 사면 더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격 푯말이 너무 이상해서 어떤 사람이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배려에서 이렇게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세 개를 살 만큼의 돈이 없거든요.”
이런 이유로 적게 살수록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도록 가격 책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라서 실제로 이런 곳이 있을까 싶습니다. 특히 전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드러난다면 함께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떨까요? 가족 안에서 합리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를 줬으니, 나도 하나를 받아야 한다는 철저히 계산적인 사고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유일한 법칙이 있다면 사랑의 법칙이지요. 받은 것이 없어도 기쁘게 모두 줄 수 있다고 하는 사랑의 법칙입니다. 사랑만 있다면 어떤 불합리도 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만든 성가정을 기념하는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 가정 안에 세상의 합리적인 기준들이 드러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세상의 합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행복한 가정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머니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그런데도 이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야 할 사랑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메온의 예언처럼, 성모님의 영혼이 칼에 찔리는 아픔도 있었지만, 사랑으로 인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는 사랑이 충만한가요?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다 보면, 그 사랑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어 그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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