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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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책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작품으로 1865년에 소개된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어렸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 봤던 기억을 통해서 이 책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줄거리만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겨우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렇지 않을까요? 인류 역사를 통해 하느님이 얼마나 많이 알려졌습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느님을 더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인 기도도, 주님께 올리는 제사라 할 수 있는 미사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도…. 우리는 충실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느님을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많이 알수록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종’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커지길 원합니다. 즉,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게 되면 감히 커지려고도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바치고 있는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 종이 아닌 주인 행사만 합니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면서 종의 말이 아닌, 주인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받은 것에 만족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은 것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때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욕심보다는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