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어느 대학의 실험실에서, 심각한 열량 부족에 시달린 쥐들은 수명을 50%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보통 쥐의 수명이 2~3년인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열량 부족에 시달리면 3~4.5년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런 생활 방식을 채택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꾸준히 기아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체지방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무더운 날에도 몸이 떨렸으며 활기가 사라졌습니다. 삶 자체가 너무나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들이 더 오래 살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고서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 삶이 길게 느껴질 것은 분명하지만,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을 것입니다.
장수가 행복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또 많은 재산과 세속적 지위 역시 행복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것, 그것만이 늘 진정한 행복의 이유가 됩니다.
지금 생각하는 행복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십시오.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거센 돌풍이 이는 것입니다. 제자 중 많은 수가 어부 출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깨울 정도라면 얼마나 거센 돌풍이었는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상태, 결국 예수님을 깨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전문적인 자신의 기술도 필요 없었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생각대로 예수님께서는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라는 꾸짖음만으로도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세상 안에서 인정받는 기술이나 재능이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않습니다. 세상 안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부귀영화 또한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않습니다. 오래 사는 것 역시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지금의 두려움을 없애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겁을 내지 않고 지금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음은 곧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믿음의 삶은 반대로 행복의 시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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