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희망에 찬 또 다른 출발점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수천년간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 풍속도까지 뒤바뀌게 했습니다.
그 얼마나 정겨웠습니까?
평소 각자 삶의 자리에서 발버둥치다가 오랜만에 고향집에 모여 오손도손, 알콜달콩 밤늦도록 시간가는줄 모르고 쌓인 정담을 나누던 시절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선책을 찾는 것이 도리겠지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이지는 못할지라도 영상통화나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설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기도해드리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이라는 성경 말씀이 오늘따라 어찌 그리 피부로 와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가정만 해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영원할 것 같았던 탄탄했던 가족 구조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앞 세대가 한명 한명 떠나고 허물어지자 신기하게도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의 든든한 보루셨던 할머님께서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허무하게도 먼저 떠나가셨습니다.
제게는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든든했던, 마치 슈퍼맨 같았던 아버지께서도 자동차 시동 꺼지듯이 스르르 사라지셨습니다.
듬직하고 자랑스러웠던 형 조차 뭐가 그리도 급했던지 작별 인사조차 못하고 황급히 건너갔습니다.
따지고보니 저는 어느덧 가계 구조 안에서 최상위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꿈을 꾸는데, 먼저 떠나신 할머님, 아버님, 형, 이모, 고모, 사촌 누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다들 큰 강 건너편에 계셨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이모, 고모, 사촌 누나들이 너무 고운 것이었습니다.
이팔청춘 때의 얼굴이었습니다.
까르르 웃으면서 저에게 빨리 건너오라는 듯이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난 저는 “오늘은 내 차례요 오늘은 네 차례”라는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수시로 하게 되는 수많은 착각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참 많은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 음식은 칼로리가 그렇게 높지 않을거야. 마음껏 먹어도 괜찮을거야!”
“통장에 얼마나 잔고가 남아있을까? 아직 많이 남아있겠지?”
“나는 절대 착각하지 않을거야!”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거야.”
“하느님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거야!”
다양한 착각 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여기는 착각입니다.
적어도 죽음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착각입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난다긴다 해도 대자연의 순환주기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그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하느님 측의 마지막 초대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마음같아서는 가는 세월을 꼭 붙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웬걸, 잠깐 한 눈 팔다보면 순식간에 70이요 80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 백번 생각해봐도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수명이 길다 하더라도 100세를 넘기기 힘듭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백일 붉은 꽃이 없습니다.
오늘의 아름다움, 지금 이순간의 상승무드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이 꿈결 같은 행복, 이 순간의 축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도 잘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순환의 법칙은 때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순간, 꽃 같은 젊음도 가고, 인생의 절정기도 가고, 그 좋았던 시절도 가고, 결국 우리 앞에 남게 되는 것은 시들고 메마른 육체, 그리고 임박한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예외적으로 특별대우를 받게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깨어있는 종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는 바처럼 주님의 오심을 잘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사람들과 달리 죽음에 대한 시각이 철저하게도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 죽음으로 인해 끝입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죽음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 그간 일궈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다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앙은 우리에게 죽음을 준비시킵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죽음은 결코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임을 일깨워줍니다.
죽음은 나약한 우리 인간과 사랑 지극한 하느님이 온전히 합일되는 감사의 순간입니다.
죽음은 부족한 우리 존재가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충만히 실현되고 완성되는 은혜로운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신앙인들과는 달리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힘입어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절망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희망에 찬 또 다른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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