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 당시 즐거운 놀이는 장기였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마친 뒤에는 휴게실로 몰려가서 장기를 두곤 했습니다. 그러나 장기판의 숫자가 제한적이라서 모두가 장기를 둘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나머지는 장기 두는 것을 옆에서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기판 옆에는 이런 사람이 꼭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 보고 있다가 “그렇게 두면 안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훈수를 두는 것이지요. 그러면 반대편에서 장기 두는 사람은 “어디서 훈수를 둬?”라며 화를 내곤 했습니다.
이렇게 훈수를 잘 두는 사람이 꼭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은 아닙니다. 장기를 직접 두지 않고 훈수할 때만 실력 발휘를 하는 것일까요? 바로 멀리 떨어져서 장기판을 보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잘 보이는 것이지요. 아마 노안이 온 사람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약간 떨어져야 잘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악의 유혹이 너무나 많아서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유혹을 이겨내고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싶지만, 그 유혹의 무게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지요.
유혹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볼 수 있는데, 유혹만을 그리고 죄의 뿌리만을 바라보면서 힘들어합니다. 유혹 자체를 없앨 수 없습니다. 이 유혹은 예수님도 받으셨습니다.
하와를 시작으로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모든 것이 풍족한 에덴동산에서의 유혹이었고, 예수님은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서의 유혹이었습니다. 더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에 단번에 넘어가는 것도 부족해서 아담까지 유혹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 결과 온 인류가 원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사십 일 동안이나 유혹을 받으셨지만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가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하셨습니다. 유혹을 이겨낸 뒤에야 세상에 외칠 수가 있었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우리도 많은 유혹을 겪게 됩니다. 그 유혹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내게 큰 기쁨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항상 답답하고 어두운 마음만을 갖게 합니다. 세상에 기쁨을 외칠 수가 없게 됩니다.
사순 제1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이기시고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던 모범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유혹이 다가올 때, 조금 떨어져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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