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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3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23 조회수 : 24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아시다시피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함께 사는 형제가 제 성격에 딱 맞다며 별명을 하나 지어줬는데 ‘조급’ 양신부랍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천하태평같고 여유만만해 보이지만, 같이 살아보니 엄청 급하답니다.


미사 입퇴장 할때도 광속이라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답니다. 바깥 일도 천천히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아무 말도 않고 그냥 혼자서 다 해버린답니다. 따지고 보니 그런 구석이 없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 사도도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수제자답게 진중하게 생각도 해보고, 여유있게 움직이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 질문을 던질 때면 다른 제자들에게 기회를 줘도 좋을텐데, 제일 먼저 나서서 대답하다가 늘 점수 왕창 깎아 먹기 일쑤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성격은 공으로 표현하자면 럭비공이었습니다. 축구공이나 농구공은 바닥에 튀면 대충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이 됩니다. 그러나 타원형인 럭비공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천방지축, 티격태격의 명수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수난 직전 적대자들과 대치 상태에서 예수님께서는 순순히 병사들에게 붙잡히십니다. 아버지의 때가 왔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사도는 칼을 뽑아 대사제 종의 귀를 내리쳐 잘라버립니다.


피가 뚝뚝 흐르는 잘라진 귀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아프다고 울부짖는 대사제의 종의 모습을 상상해보셨습니까? 귀를 잘랐기 망정이지 목이라도 쳤으면 살인자가 될 뻔 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예측 불가능한 돌출행동으로 예수님을 비롯한 제자공동체 멤버들을 당혹스럽게 하는데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허물 이 너무 많아 부적격자로 보이는 베드로를 수제자요 반석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쉼없이 흔들리던 그를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나약하기 그지 없는 한 인간 존재, 그래서 언제나 좌충우돌, 흔들리던 시몬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맡기시고, 천국의 열쇠까지 맡겨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얼마나 큰 마음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치 오늘 우리들처럼 지상 생활 내내 쉼없이 흔들렸던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스승님으로부터 잦은 질타를 받던 ‘관심 사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정확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나약함, 죄, 인간적인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수시로 흔들렸지만 흔들릴 때 마다 겸손하게 외쳤습니다.


“주님 보시다시피 저는 보잘 것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저는 당신 제자로서 부당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아시다시피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시몬 베드로는 정확한 자기 인식의 기반 위에 각고의 노력을 더해, 마침내 그 어떤 세찬 비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교회의 반석으로 거듭났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존재 자체로 오늘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겸손함입니다. 그러한 겸손의 덕 위에 부단히 자신의 결핍, 나약함,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솔직한 자기 인식을 위한 노력이 또한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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