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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2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3-12 조회수 : 2781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사랑은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것이며 무제한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 시대 율법학자라고 해서 다 위선자들, 날나리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라든지, 바오로 사도의 스승이자 온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던 가말리엘 같은 율법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신앙심이 깊고 열린 마음을 지닌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을 무엇입니까?”(마르코 복음 12장 28절)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율법 계명은 총 613개였습니다. 그 중에 248개의 계명은 적극적인 계명이었고, 나머지 365개는 소극적인 계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절대적, 강제적인 것, 무거운 계명이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권유적이고 경미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이 목숨처럼 중요시 여겼으며 앞자리에 두고 싶었던 계명은 안식일과 관련된 계명이나 할례에 관한 계명, 정결례와 관련된 계명, 단식에 관한 계명, 제례와 관련된 계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목숨 걸고 강조했고 이를 어겼을 경우 가차 없는 잣대를 들이대곤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율법학자는 613개의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도가 높은 계명, 그래서 우선적으로 강조해야 하는 계명, 즉 가치나 등급이 가장 높은 계명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안식일 계명이나 할례나 정결례와 관련된 계명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웬걸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장 4절과 레위기 19장 18절을 복합적으로 인용하며 ‘사랑의 계명’을 제1계명으로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코 복음 12장 29~30절)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그냥 말로만, 입술로만, 기도문 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함에 있어 적당히,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모든 에너지를 다 투자해서 성심성의껏 사랑하라는 당부 말씀입니다.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음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코 복음 12절 30장)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이웃을 향한 사랑도 종래 유다인들이 그려왔던 사랑과는 차별화됩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웃은 ‘절친’,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의 개념은 보다 포괄적이고 광범위합니다.


물론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포함되겠습니다. 그러나 동심원은 점점 확대 됩니다. 적대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을 비롯한 이방인들, 꼴 보기 싫은 세리와 죄인들, 생활이 문란했던 사람들, 더 나아가 나를 공격하는 적들, 원수들까지 이웃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것이며 무제한적인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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