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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3-18 조회수 : 3667

신학생 때 서품식 때가 되면 상당히 분주해집니다. 인천교구는 서품식 때 후배 신학생들이 전례, 성가는 물론 행사 진행 일체를 도맡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가대는 성가 연습을 하느라 참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가대를 지휘하는 음악부장 신학생은 늘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른 사람의 음에 귀 기울이세요. 자기 소리는 낮추어야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 소리만 크게 내면 절대로 아름다운 성가를 화음에 맞춰서 부를 수가 없게 됩니다. 이는 이 세상의 삶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자기만 잘 났다며 목소리를 높인다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만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내 배우자의 목소리를 듣고, 내 가정 구성원의 목소리를 서로 잘 들어 주어야 화목해질 수가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료의 목소리를 들어야 서로 도우면서 일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 된다’라는 것은 우선 듣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도 먼저 들어야 했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서 듣지 않는다면,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의 뜻은 늘 아버지와 성령의 뜻과 일치를 이루지만,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은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일은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내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들은 다른 어느 사람도 할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본성을 지니고 계심을 입증해 줍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항상 아버지의 영광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좇을 때가 너무 많지 않았을까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보다 인간이 주는 영광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보다 세상을 더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은 명쾌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여전히 주님을 믿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광이 아니라 인간이 주는 영광만을 추구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더 큰 선물을 위해 우리에게 오셨지만, 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공정함을 상징하는 눈가리개

법원에 세워져 있는 눈을 가리고 검과 저울을 들고 있는 여신의 상을 기억하십니까?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입니다. 한 손에 있는 검은 법의 힘을 상징하고, 또 한 손에는 법의 엄격함을 상징하는 천칭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눈가리개는 중세 이후에 추가된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법의 공정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미국의 한 지방법원의 ‘제인스 허킨스’ 판사는 재판 때마다 눈을 하얀 헝겊으로 가렸다고 합니다. 시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원고나 피고 혹은 증인 중의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이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 자신도 모르게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의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정의가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좌우된다면 사회질서의 뿌리가 흔들리는 일입니다.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정의를 우리 각자의 일상 삶 안에서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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