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왕이 세자빈을 구한다는 방을 붙였습니다. 여러 심사를 통해 3명의 규수를 마지막 후보로 선발하고서 소량의 쌀을 나눠주면서 숙제를 주었습니다.
“너희는 이것으로 한 달 동안 먹고 지내다 오너라.”
성인이 아껴먹어도 한 달 살기는 너무나 부족한 양의 쌀을 주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세자빈이 되기 위해 이 명령을 충실히 따라야만 했습니다.
한 달 뒤, 두 처녀는 너무나 말랐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처녀는 이전보다도 더 좋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떡을 한 시루 머리에 이고 궁궐에 들어왔습니다. 왕이 “적은 쌀로 한 달을 먹고, 떡까지 해올 수 있었느냐?”라고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그 쌀로 떡을 만들어 장터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윤으로 쌀을 사고 또 떡을 만들어 팔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남은 쌀로 떡을 해서 이렇게 임금님께 바칩니다.”
어떤 규수가 세자빈이 되었을까요? 당연히 쌀로 떡을 만들어온 규수가 세자빈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인가라도 해서 당신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길 원하실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을 맞이하는 오늘, 요셉 성인에 대해 묵상을 하게 됩니다. 성인은 아직 혼인하기 전에 성모님의 잉태 소식을 듣게 되지요. 사실 주님 탄생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그 신비는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당신의 보이지 않는 신성을 보여 주시려고 눈에 보이는 육신을 취하신 것입니다.
천사는 요셉이 자제를 배우고 위로를 받도록, 그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 그가 느낀 것, 두려워한 것,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그에게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천사는 또 요셉에게 구원자의 이름을 붙이는 영예를 베풀었으며, 아이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도록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중에 마리아를 당신 제자에게 맡기시듯이, 지금 마리아를 요셉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요셉에게, 아버지로서 아들의 이름을 붙이는 영예도 주었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뜻을 요셉은 받아들이십니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묘사된 것을 보면, 그가 성모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메시지를 받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바로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에 그대로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로써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곳인가요?
우리는 종종 광고를 보게 됩니다. 식당 광고, 물건을 파는 광고, 관광지와 영화, 공연 광고 등등 참으로 많은 광고가 있습니다.
이 광고를 왜 할까요? 사람들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식당을 이용하면 저희가 부자 됩니다.’, ‘이 영화를 많이 봐야 저희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면서 광고할까요? 아닙니다. 대부분 돈을 써도 절대로 손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도록 광고합니다. 그리고 자기 돈을 쓰고라도 손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단순히 헌금만 내라고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생명과 구원, 나눔과 기쁨을 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알리고 있을까요?
(조명연 마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