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가 있어야 변화가 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계기가 없다면 변화의 이유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큰 변화도 자그마한 계기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했던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은 당시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면서 신부 같지 않은 생활을 하는 저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실력을 채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기도와 묵상을 소홀히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 사회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반년 정도 하다 보니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겼습니다.
신부로 살려고 시작한 것이 매일 새벽마다 쓰고 있는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라는 묵상 글입니다. 20년을 꼬박 썼습니다. 어떻게든 신부로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글 쓰는 재주도 없었고 게을러서 작심삼일에 그칠 때가 많았던 저의 모습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그런데 나를 변하게 할 계기는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계기로 만들어낼 변화의 크기가 아닐까요? 그러나 이 크기를 결정하는 시작은 늘 작은 계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내게 다가오는 계기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계기도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에, 계기 하나하나에 집중할 때마다 변화의 크기는 더 커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적대하는 이들에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 안에서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을 때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믿음 없음을 보시고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엄포를 놓습니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이런 엄포가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누구는 이 계기를 통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키워서 하늘 나라의 영광을 차지했고, 또 다른 이는 이 계기를 무시해서 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던 이들을 바라봅니다. 그 기적들도 분명히 자신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는 변화를 가져올 큰 계기인데, 이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지금 내게 다가오는 주님께서 주시는 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작은 계기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에서 큰 믿음을 키울 수 있고, 이로써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유전적 영향?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는 쌍둥이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일란성 쌍둥이라 누가 누군지를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성격이나 하는 행동도 그리고 말투까지도 거의 똑같았습니다.
이 쌍둥이를 고등학생 때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얼굴만 똑같지 모든 점에서 달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란성 쌍둥이는 DNA가 똑같습니다. 즉, 유전적으로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똑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신체적 특성 중에서 90%만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전적 영향은 사춘기 때부터 쇠퇴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정신적인 요인, 환경의 차이 등을 비교할 때 일치의 확률이 현전하게 낮아지는 것입니다.
유전적으로 DNA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도 똑같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춘기를 시작으로 한, 자기 삶의 모습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유전적인 이유를 붙여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유전적 영향은 사춘기 전에 이미 끝났습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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