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루카 18,35-43
영적인 눈을 뜨는 순간 우리 삶은 새롭게 시작됩니다!
육체적으로 눈먼 사람보다 더 가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신적, 영적, 신앙적으로 눈먼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봐야 하는데, 한 부분만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자신의 편협되고 왜곡된 관점을 끝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서 쳐다봐야 하는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바로 또 다른 형태의 눈먼 사람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기 전까지 우리네 삶은 많은 경우 피곤합니다.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왜냐하면 육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은 찬탄과 즐김의 대상이 아니라 사사건건 극복과 도전의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영적인 눈을 뜨기 전까지 우리네 삶을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 치이고 저기 차이고 아등바등 그렇게 이 한 세상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을 뜨는 순간 우리 삶은 마치 날개를 단 것 같은 삶으로 변화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특별한 체험 한 가지를 하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절대적인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전에는 꼭 있어야 될 것들이었는데, 이제 없어도 견딜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면 좋은 것이 무엇보다도 불평불만이 없어집니다.
부족해도 좋고 남아도 좋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추운 대로 좋습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괜찮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습니다.
그러나 없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통이 있어도 견딜만합니다.
고통이 없으면 감사하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자비하신 하느님을 향해 우리의 눈을 뜨는 순간 우리 삶은 새롭게 시작됩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매사에 초연해질 것입니다.
고통의 유무, 상처의 유무에 상관없이 충만한 평화와 기쁨이 찾아들 것입니다.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눈을 감고 지내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나 자신의 내면에 긷든 악을 솔직히 들여다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 눈을 감아버립니다.
이웃들 안의 존재하는 어두움과 강함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눈을 감아버립니다.
내 약함과 형제의 부족함을 견뎌내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눈을 감아버립니다.
오늘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힘차게 눈을 뜨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무서운 장면 앞에 눈을 감아버립니다.
그런 아이를 엄마가 품에 안고 어루만져주면 아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어머니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나약함으로 인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사랑 많으신 하느님의 품에 푹 안길 때만이 우리는 다시금 눈을 뜰 수가 있습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더 이상 지난 상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를 홀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이상 형제를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웃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뜬다는 것은 내 부족함과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에 힘입어 다시금 새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