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화요일>(11.16)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19,5)
'예수님과 자캐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 세관장이고 부자였던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키가 작아 군중에 가려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캐오는 앞질러 달려가 예수님을 보려고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자캐오를 먼저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자기 집에 맞아들입니다.
그 구원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립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캐오는 '회개'를 합니다.
이렇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드러냅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19,8)
자캐오는 세관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면,
그것은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양심의 가책'과 동족 사람들로부터의 '소외'였을 것입니다.
그는 이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자캐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결정적인 한계로 인해 지금 '기뻐 즐거워하지 못하는 삶', '너와 함께하지 못하는 소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우리도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을 볼 수 없는 나의 결정적인 한계는 무엇인가?
성령의 힘과 성모님의 도움으로 이 한계를 극복하고,
지금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