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해외 진출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참 많이 올라갔습니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정점을 찍고, 아카데미 수상에서도 한국 영화가 최고 작품임을 알립니다. 여기에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케이팝(K-Pop)과 케이무비(K-Movie), 케이드라마(K-Drama)는 해외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해외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던 때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랬을까요?
사전심의가 폐지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이 사전심의가 대단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장희의 ‘그건 너’라는 노래는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내용이라고 금지곡이 되었고,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냐면서 부정적인 내용이라고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검열로 표현의 자유가 있을 수 없었고, 자연히 작품성이 떨어지는 그냥 일반적이고 무난한 작품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이 안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케이컬쳐(K-Culture)로서 국가의 위성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간섭을 줄이고 자유를 늘려주신 것입니다. 이를 주님의 무책임한 방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주님께서 주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귀족이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습니다. 귀족이 돌아온 뒤, 어떤 종은 열 배로 또 다른 종은 다섯 배로 불립니다. 그러나 주인인 귀족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냥 자기 합리화로 얼버무리는 종의 미나는 빼앗아서 열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고 하지요.
이 이야기는 투자를 잘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 예를 들면 우리의 생명, 우리의 시간, 우리의 재능들을 열심히 사용해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이지요.
똑같이 하나의 미나를 나누어주시듯이,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합니까? ‘왜 저 사람만을 더 사랑하실까?’라면서 주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나는 능력이 없어서요’라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외면하고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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