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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1-24 조회수 : 1278

1940년 9월 7일. 348대의 독일 폭격기가 영국 해협을 횡단해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9개월에 걸쳐 런던 지역만 8만 개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어 100만 채의 건물이 파손, 파괴되었으며, 영국인 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신의학자들은 몇 개월에 걸친 폭격으로 사람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 이상을 일으키리라 생각했습니다. 슬픔과 분노는 분명히 컸습니다. 그러나 정신병동은 텅 비었고, 오히려 이 기간에 정신건강이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줄었고, 자살하는 사람도 평상시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전쟁 후에 이 대공습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서로 도왔고, 정치적 입장도 또 빈부의 격차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인간은 자기 본성의 모습을 찾는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의견에 공감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우리의 본성은 분명 주님의 속성인 ‘사랑’에 맞춰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수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렵고 힘들 때가 바로 자기 본성을 찾아 나서는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시련과 어려움으로 상징되는 박해에 대한 설명을 하십니다. 박해는 ‘죽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힘든 시간, 가장 무서운 시간일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이 박해에 어쩔 수 없다면서 배교를 해야 할까요? 주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내 목숨이 살고 봐야지 라면서 주님을 모른다고 말할까요? 

지금은 그런 박해가 없어서 이에 따른 피의 순교도 없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박해는 계속해서 찾아옵니다. 즉,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배교이며,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것 역시 주님의 뜻에 반대되는 또 하나의 배교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도 있어.’라며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마음 역시 배교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런 배교의 유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배교를 하게끔 유혹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이렇게 주님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모든 유혹을 이겨내는 인내입니다. 이 인내로서 생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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