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는 참 많은 놀이가 있었습니다. 몇 달 전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 등장했던 놀이는 모두 제가 어렸을 때 즐겼던 놀이였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게임,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 등등…. 그 밖에도 많은 게임으로 심심한 줄 몰랐습니다. 워낙 게임을 같이 할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참고로 한 반에 70명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심심해할 때가 있기는 했습니다. 동네 친구들이 모이지 못했을 때, 서로 의견의 일치가 되지 않았을 때는 할 것이 별로 없어집니다.
“~ 할까?”라고 제안을 했는데 반응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가 “그러면 이거 할까?”라며 새로운 놀이를 제안합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그냥 헤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냥 집에 가자.”라는 말에 하나둘씩 집으로 향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장터에서 혼례잔치 놀이를 하자고 했습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장례 놀이를 제안했습니다. 역시 반응이 없습니다. 어떤 놀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흥미를 잃은 세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기쁜 소식에 대해서도 그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떤 말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느끼고 그 안에서 함께 하며 기쁨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불평불만으로 힘들다고만 말합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들은 어디에 흥미를 느껴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이사 48,18.19)
주님의 계명에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어기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계명은 우리를 구속하고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평화와 의로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며, 이 모든 은총이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흥미를 느끼고 있나요? 세속적인 것에 대한 흥미가 너무 많아서 주님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요? 교회와 주님 말씀을 외면하는 지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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