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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27 조회수 : 873

칼 한 자루를 구입했습니다. 택배를 통해 받은 칼을 보다가 잘 드는지 궁금해서 손을 만졌다가 손을 베고 말았습니다. 칼이 잘 드는지 몸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동시에 부끄러워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칼질하다 손을 벤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뜨거운 국물을 허겁지겁 마시다가 입천장이 다 까진 것, 책 읽다가 종이에 손을 벤 것 손톱 정리하다가 깊게 들어가 속살까지 잘라낸 것, 급하게 움직이다가 넘어진 것 등등…. 어리석은 모습이 내 안에 끝없이 나왔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이 내게 이런 상처를 주면 어떨까요? “그럴 수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자신에게 너그럽고 남에게 인색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든 다 똑같습니다. 내게 너그러울 수 있다면, 남에게도 너그러워야 합니다. 이런 일관된 모습만이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을 발견하고 11명의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와 신자들을 대표하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알립니다. 이 둘은 이 말을 듣고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요한이 훨씬 젊었는지 아니면 뜀박질을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무덤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이상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무덤에 도착했지만,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만 했을 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서워서 그랬을까요? 
 
그보다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맡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라고 자신이 먼저 보고 판단하고 결론을 낼 수도 있었지만 모든 판단을 베드로에게 맡기는 겸손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했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이 겸손이 아닐까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겸손의 모습이 그가 사랑받았던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겸손의 모습으로 왔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역시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반대의 모습을 산다면 분명히 어리석은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모두에게 너그러운 삶을 살아야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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