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위해 중화요리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늘 하던 대로 이번에도 고민이었습니다. 어떤 고민이었을까요? 맞습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이 고민 해결을 위해 주변 테이블을 바라봅니다. 많이 드시는 음식이 맛있을 확률이 높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짜장면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직원이 고른 짬뽕을 보니 ‘짬뽕이 더 맛있겠다. 짬뽕시킬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곧바로 나옵니다.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다른 경우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후회를 안고 사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특히 늘 후회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정말로 후회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될까요?
자신의 선택에 어떤 커다란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후회가 적다고 합니다(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드리어, 음식을 선택할 때는 ‘오늘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른다.’라는 원칙이 있다면 후회를 줄일 수 있습니다.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라는 원칙이 있어도 후회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떤 선택을 하실 때, 늘 원칙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인해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치유의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 원칙을 누가 깨고 싶을까요? 바로 마귀는 사랑의 선택을 철저하게 방해합니다. 예수님을 향해서도 그러했지요.
예수님 앞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말합니다. 어떤 정신질환이 아닌, 더러운 영이 들린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시 랍비가 쓰던 구마 방법이 아니고 단 한마디의 말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마귀의 유무를 떠나서 병마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셨고, 가장 빠른 방법으로 고쳐주신 것입니다.
더러운 영을 지닌 사람은 예수님의 일을 훼방하려고 소리소리 고함을 쳤습니다. 특히 신앙고백의 가면을 쓰고 예수님의 정체를 일찌감치 드러내어서 예수님의 선택을 방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일도 하기 전에 반대자들에게 방해받도록 하려는 잔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훼방이 예수님께서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 사람에게서 썩 나가라는 한 마디로 내쫓으십니다.
사랑의 원칙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원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마귀를 쫓아낼 수 있으며,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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