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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19 조회수 : 1280

어렸을 때, 이웃과 서로 나누는 음식이 참 많았습니다. 어떤 음식이든 조금 많다 싶으면 어머니께서 싸주셔서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 나눔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그 나눔이 사라졌을까요? 어느 책에서 보니, 냉장고가 커지면서 나눔이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냉장고를 통해 유통기한이 길어졌습니다. 냉장고가 없을 때는 버리지 않으려면 당연히 이웃과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냉장고가 없으니 보관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고, 음식을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는 이웃과 나누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냉장고가 생기면서 이웃과 나눌 이유가 줄어들었습니다. 냉동실에 넣어두면 아주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에 냉장고가 처음 생겼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했는데, 아이스크림과 같은 시원한 얼음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었으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나눔을 방해하는 물건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내게 편안함을 주지만 따뜻함을 나눌 수 없게 했습니다. 

나만 편한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함께 나누는 것이 좋을까요? 냉장고를 치워야 할까요? 그런데 이제 냉장고 없이는 못 살 것 같습니다. 나의 편안함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논쟁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지,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하면서 그 어느 것보다도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굳어 버리다 보니 율법이 곧 하느님이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가장 편안한 냉장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자렛인들의 복음서’라는 외경에 나와 있는데, 그는 오른손으로 밥벌이하는 장인이었고, 손이 오그라들어서 가족을 부양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병자 앞에서 치유의 합법성 문제를 따지고 있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완고한 모습에 화가 나셨습니다. 치유될 수 있음에도 안식일 법에 따라서 모르는 체하는 그들의 위선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눔을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냉장고처럼, 사랑이라는 근본정신을 가지고 있는 율법이 오히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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