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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30 조회수 : 932

“신부님이 지난번 강론 때 해주신 말씀에 큰 힘이 되었어요.”

어떤 자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계속 이야기하시는데,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했다고 하는데, 처음 듣는 말처럼 낯설기만 한 것입니다. 이번 딱 한 번만 그랬을까요? 이런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그렇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립니다.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선배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신학교에 함께 다닐 때의 선배님 모습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면서, 앞으로도 그런 멋진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지요. 하지만 선배 신부님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진짜로 그랬어?”라면서 남 이야기하듯 말씀하십니다. 

과거는 낯선 나라입니다. 내가 살았던 과거이지만 분명히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100% 기억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진실이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낯선 나라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는 나의 나라가 아니기에, 이 나라에서 벗어나 진짜 지금의 내 나라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라는 낯선 나라만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나의 나라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다른 이에게도 과거라는 낯선 나라를 들이대면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등지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며 많은 기적을 나타내 보이신 다음, 고향 땅 나자렛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면서 시기심에서 나오는 언짢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런 반대 기운을 알아차리신 예수님께서는 악의에 찬 불신자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오히려 믿는 이방인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이 점을 알리려고 구약시대에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박해하는 이스라엘을 버려두고 이방인의 땅에서 고생하는 사렙타의 과부를 찾아가 기적으로 도와준 일과, 예언자 엘리사도 이방인 나병 환자 나아만을 고쳐 준 사실을 예로 듭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실 수 없었던 것은 믿지 않는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모습에만 매여 있기에 예수님께 믿음을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원의 손은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뻗쳐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과거라는 낯선 나라에 속해있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미래를 향하는 ‘지금’이라는 나라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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