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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4-12 조회수 : 1524
산업 혁명 이후 유럽의 강대국들은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이 식민지 쟁탈전의 선두 주자는 영국과 프랑스였는데, 특별히 영국의 식민지 중 오스트레일리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의 죄수들을 수용하는 식민지였던 것입니다. 죄인들을 모두 배에 태워 보내 버리면 영국은 진정한 평화가 오리라 생각했고, 더 번영할 것으로 본 것입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는 삶의 질이 매우 우수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죄인을 수용하기 위해 점령한 나라인데, 지금은 영국보다도 더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죄인을 무조건 없애면 진정한 평화가 올까요? 아닙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 같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차별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분명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늘 용서와 사랑을 말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악을 그 자리에 없애지 않는 것은 모두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합니까? 끊임없이 판단과 단죄를 하면서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반에도 그들 모두 사랑으로 함께하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배반할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빵을 적셔서 유다에게 주시지요. 이는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인 욕망에 젖어서 자기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어둠의 길로 달려 나갑니다.

예수님의 외로움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자신이 직접 뽑은 제자가 배신하고, 교회의 반석으로 삼은 베드로는 곧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제자 역시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당신 수난과 죽음을 온전히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짊어져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의 장담을 보게 됩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님 앞에 호언장담할 때가 많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것처럼, 끝까지 주님과 함께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에 얼마나 자주 넘어지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조건을 내겁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아무 일도 없으면, 건강이 허락되면, 가정이 평화로우면, 돈을 많이 벌면,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이런 조건이 해결되면 또 다른 조건을 내세우면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핑계를 만드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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