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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4-15 조회수 : 1446
이 세상 안에서 주어지는 죄의 유혹에 올바르게 살기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죄의 구렁텅이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뉴스를 보면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악행의 모습들을 보며 진짜로 그렇다는 확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들처럼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남들처럼 무감각하게 죄짓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이런 환경을 주신 하느님을 원망해야 할까요?

창세기에 나오는 롯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아브라함의 조카로, 땅을 나눌 때 자신의 욕심 차리기에 급급해서 비옥해 보이는 소돔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악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그네로 보이는 천사에게 행한 그의 모습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천사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하지요. 결국 이런 사랑의 행동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속에서 탈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오히려 악인이 가득한 소돔에 있을 때 그가 선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장소나 상황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지금의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들도 위기 체험을 통해 거룩해졌다고 하지요.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도회에서 독방에 갇혀 있어야 했었고, 이냐시오 성인들도 교회로부터 거부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순명하셨습니다. 이 안에서 주님께 대한 사랑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왜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명하셨고, 사랑에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을 향해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이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며 적의를 보입니다.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들이 이제 감히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습니다. 모든 악이 이 안에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 커다란 은총이 있었습니다. 우리 구원의 시작이 이 악을 이겨낸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도 악의 한 가운데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평불만으로 이 악을 이겨낼 수 없다면서 남들처럼 사는 편한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악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이겨내셨듯이, 우리 역시 이 안에서 주님께 순명하면서 사랑에 철저하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 그 길이 바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나의 구원도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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