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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4-29 조회수 : 1726
은퇴 후 시골에 내려와 사는 어느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집에도 그처럼 은퇴한 후 내려와 사는 분이었는데, 그래서 이 둘은 아주 친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옆집 이웃이 형제님에게 말합니다.

“이번에 이 동네에 이사 온 사람도 우리처럼 은퇴 후에 이곳에 내려온 것이라고 하더라고. 내가 한 번 우연히 만났는데 우리와 아주 잘 맞을 것 같아.”

이 형제님은 물었습니다.

“은퇴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데?”

그러자 이웃은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답에 형제님께서는 부끄러워졌다고 합니다. 과거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데, 은연중에 과거를 통해 어떤 선입관을 가지려고 했었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과거를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모습에 집중해야 합니다. 과거를 알면 이상한 선입관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었다고 하면 따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회계사라고 하면 깐깐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또 정치인은 겉과 속이 다른 것처럼, 사업가면 자기 이익만을 챙길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두 정확하지 않은 예측일 뿐입니다. 일 자체가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제일 중요합니다. 과거의 삶을 통해 현재를 산다고 말하지만, 완전히 다른 현재를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지금에 집중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장정만도 오천 명쯤 되는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곳은 아주 외딴 넓은 공터만 가능했을 것입니다. 마을 한가운데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싶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어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던 이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적어도 노동자의 이백 일치 품삯이 있어야만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필립보가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을 잊었고, 과거의 경험에만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굳이 과거의 경험을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그들 모두 배불리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차고 넘치는 은총이 지금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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