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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5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5-15 조회수 : 130

사도행전 14,21ㄴ-27  요한 묵시록 21,1-5ㄴ  요한 13,31-33ㄱ.34-35 
 
우리는 하느님 말씀의 진의, 본심을 파악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매일같이 빼먹지 않고 렉시오 디비나(聖讀)를 꾸준히 해온 지가 벌써 30여 년이 다되어 갑니다.
성독의 은총이나 위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말씀 한마디, 단어 하나가 살아 숨 쉬는 느낌입니다.
때로 말씀이 살아서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오시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 같은 경우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양식이 되는지 모릅니다.
몇천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에너지를 제게 건넵니다. 
 
“보라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요한 묵시록 21장 3~4절)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난해하면서도 흥미로운 책인 동시에, 성경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책이
요한 묵시록입니다.
요한 묵시록을 읽거나 해석하거나 묵상할 때 꼭 유념할 사항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 안에는 유다 묵시 문학 특유의 상징적인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문자 그대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정통 교부들이나 신학자들, 성경학자들의 권위 있는 가르침 안에서 읽고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요한 묵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어마무시한 메시지를 접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당신 백성을 향해 그분께서 건네시는 희망과 격려 차원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이천년 교회 역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이비 목자들과 이단자들이 요한 묵시록을 악용하면서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성경 근본주의자들은 요한 묵시록에 표현된 글자 그대로 종말이 곧 올 것이라는 가르쳤습니다.
아직도 종말에 대한 그릇된 해석으로 사람들을 큰 혼란에 빠트리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마치 어린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진정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잘했을 때 칭찬도 하지만, 그릇된 길, 죽음의 길을 걸어갈 때는
강한 질타와 경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두려운 표현들은 그런 사랑의 틀 안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큰 틀에서 바라보니 묵시록은 세상 따뜻한 성경입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기에, 때로 격려와 위로도 하시지만. 때로 강력한 질책이나 경고도 하시는 하느님, 그 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인 하느님의 마음이 잘 드러난 성경이 묵시록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 선포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진의, 본심을 파악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진정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칭찬이나 격려만 하지 않습니다. 
 
실패와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칭찬뿐만 아니라 피눈물 나는 질책도 서슴지 않는 분이 곧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말씀의 중심, 결론에는 언제나
우리를 향한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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