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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5-20 조회수 : 123
복음 요한 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미국의 뇌신경학자 데이비드 린든은 그의 책 ‘터치’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생후 이삼 년 동안 아이를 많이 만지지 않거나, 껴안지 않거나,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재앙이 발생한다. 접촉의 결핍은 결코 나중에 만회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를 실험해 본 사람이 역사 안에 있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프레데릭 2세 황제입니다. 그는 원초적인 언어를 찾기 위해, 갓난아기를 독방에 두고 인간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상태로 키워봤습니다. 인간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말이 가장 원초적 언어라는 판단을 한 것이지요. 결과는 갓난아기 모두 얼마 못 가 죽고 말았습니다. 접촉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실 때, 늘 접촉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죄의 결과로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만지는 것을 절대로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심지어 가까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병자들을 만지셨고, 살이 뭉그러져 끔찍한 나병환자 역시 만지셨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접촉입니다.

코로나 초창기, 어떤 할머니께서 제게 오셨습니다. 코로나 확진자와 같이 있었다면서 안수를 청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셔서 검사하셔야 할 것 같은데, 저를 찾아와 바이러스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청하는 분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습니까? 안수해드리고, 이상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검사를 받아야 했으니까요.

예수님께서 만져주신 손길을 묵상해 봅니다. 사랑이 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그런 사랑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랑이 사람을 살리고, 사랑 안에서 함께 사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먼저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이는 단순히 입으로만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도저히 접촉할 수 없는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미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주님께서는 종이 아닌 ‘나의 친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종과 주인은 수직적 관계이지만, 친구는 수평적인 관계입니다. 그만큼 주님과의 친밀감 안에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과연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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