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6월 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6-09 조회수 : 18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큰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이 듣기에는 별문제가 없는데도, 큰 모욕을 당했다며 그 사람을 향해 심한 욕을 하기도 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의 아픔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이 경우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나의 말과 생각을 24시간 쉬지 않고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나’입니다. 그런 내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남의 말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자기를 더 사랑하지 못하게 되고, 남에 대해서도 너그럽지 못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자기에게 부정적인 말만 하면 똑같이 부정적인 말로 상대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나도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향한 진심 어린 배려가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말, 사랑 가득한 말, 용기를 주는 말…. 이런 말들이 나의 자존감을 높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배려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국 작가 토마스 플러는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친구가 되어라. 그러면 다른 이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지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이 말씀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보’나 ‘멍청이’는 종교적인 의미의 말이었습니다. ‘바보’는 (머리가) 빈 놈이라는 뜻으로 생각이 없어 하느님을 따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멍청이’는 하느님도 모르는 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해서, 똑같이 잘못함으로 응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움’은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철저하게 ‘사랑’에 기반하십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모든 말과 행동은 의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반복되면서 하느님에게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화해라는 사랑의 실천이 지금 당장 이루어집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화해하면서 좋은 말들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