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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6-12 조회수 : 1064

우리는 지난주일 성령강림대축일을 지내며 부활시기를 마쳤는데, 이제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신 모든 업적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업적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미 드리기 위함이다. 즉 아버지께서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해 이루신 구원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동시에 삼위일체의 신비의 영광에 대해 흠숭의 예를 바쳐드리는 것이다. 
 
복음: 요한 16,12-15: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살아 계신 실체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구원 업적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삼위의 신비는 소위 ‘위격’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개체성을 통해 실현되는 구원업적들에 의해 그 신비가 드러난다.좀 더 쉽게 말하자면,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결코 삼위의 신비에 가까이 가지를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삼에 대한 계시는 역사적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어떤 신학적 이론으로 연역되거나 또는 그렇게 정립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일깨워주시면서 당신의 구원사명을 완성시켜줄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시는 오늘 복음은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15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위격의 ‘다양성’이 나타나지만,원초적 ‘단일성’을 언급하고 있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구별되지만 모든 것이 공통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 아버지의 것이며,그 아버지의 것을 아드님과 성령께서 이루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의 위격적 특성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해주는 역할과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알려주는 역할이다.(13절) 요한복음에서‘진리’는 철학적 개념의 존재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제물이 되신 나자렛 예수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말한다. 이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지성’이 아니라, 사랑을 동반한 ‘신앙’이다. 즉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미 ‘진리’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할 말이 많지만 그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12절) 이 말씀을 하실 때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구원업적을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서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14절) 성령이 오셔야 했다. 
 
성령은 유일한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더 깊이 참여케 해주시는 분이시고, 그 진리를 살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인 실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의 성령’은 ‘생동케 하는 성령’이 되신다. 그래서 우리 모든 신자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살도록 노력함으로써 자신 안에 성령께서 현존하심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은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13절) 요한복음에서는 “연대기적 차원에서의 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에 비추어 현재를 해석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그 종말의 빛에 비추어 해석한다면 비록 지금 당장 배반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끝날지라도 그 때에는 승리의 카드가 사랑이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부활하셨다. 분명히 패배한 그 사랑만이 유일한 승리의 실체가 된다.”(B. Maggioni, in I Vangeli, Assisi 1975, 1614) 
 
제2독서: 로마 5,1-5: 사랑 안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여기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1절),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써 보증해주시는(5절)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2절)의 은총을 누린다고 말하고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충실히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차지하시어 우리 행위의 내적 원리가 되고자 하신다. 그분이 우리의 내적 원리가 되신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우리의 삶을 모두 성령의 인도에 따른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에 대한 확고한 기다림 속에서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성령 안에 살려 노력하는 삶이 요청된다. 즉 삼위일체의 신비는 추상적인 앎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령 안에서가 아니면 성령이 무엇인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한다. 하느님은 사랑의 관계로서 하나이신 분이심을 잊지 말고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그분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는 것이 될 것이다. 
 
“하느님, 저는 당신의 삼위일체적 생명을 믿습니다.당신 사랑을 통해 그것을 믿습니다. 그 생명의 신비는 당신의 진리를 지켜줍니다. 만일 그 신비가 버려지고 만다면 그 즉시 당신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 저는 당신 생명의 평화가 우리의 본향이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적 이유에서라도 그 생명을 믿습니다.그것은 곧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보다 높이 보다 멀리 그리고 그처럼 거룩한 빛을 비추어주는 그 희망의 빛을 저에게서 꺼버리지 마소서. 오 하느님,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소서.“(R. Guar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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