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마태9,15)
'예수님과 함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9,15)
이어서 새것과 헌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9,17)고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신랑은 예수님이고, 손님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며, 신랑을 빼앗길 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새 포도주는 예수님 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고, 새 부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아내야 하는 회개하는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유다인들이 목숨처럼 중시했던 것은 율법입니다.
율법 규정 그 자체요, 단식 규정 그 자체입니다.
바리사이의 기도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루카18,12 참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일주일에 두 번 단식했고, 그것이 의롭게 되는 절대적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도 모르는 사람들, 율법도 지키지 않는 먹보요 술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좋아하신 단식, 곧 단식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지 않을까?
끊임없이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회개이지 않을까?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새 포도주)을 잘 맞이하기 위해 악습을 끊어내는 모습(새 부대)이지 않을까?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형식이나 외적인 모습에 집중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좋아하신 본질에 더 집중하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노력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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