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
새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는 기쁜 소식
[말씀]
■ 제1독서(이사 66,10-14)
유배시대 동안 유다인들은 영광스러운 복귀를 꿈꾸어 왔으나, 본국으로의 귀환은 기대에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해방에서 비롯된 열정은 금시 식어버렸다. 이사야 예언자의 정신을 계승한 ‘제3 이사야’라 불리는 익명의 예언자는 확신과 희망을 되살려주고자 한다. 예루살렘은 언젠가 분명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날 것이며, 하느님은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당신 백성을 위로할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기쁨이다.
■ 제2독서(갈라 6,14-18)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예전에 구원을 보증해 준다고 믿었던 모든 관습, 할례와 율법준수 등을 내려놓기에 이른다. 바오로에게 이는 근원적인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바오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세계에 접어든다. 이제 바오로는 일말의 두려움 없이 박해의 시간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의 적대자들이 속해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예수님의 낙인”을 몸에 지니고 살아간다.
■ 복음(루카 10,1-12.17-20)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길에 예수님은 시험 삼아 당신의 제자들을 선교로 파견하심으로써,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빛날 교회의 시기를 예고하신다. 선교는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함이 없이 펼쳐져야 하며, 완전한 내적 자유가 우선되어야 한다. 선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놀라운 힘에 도취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기쁨은 오로지 하느님 덕분에 산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김]
■ 우리는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방법이나 수단을 찾아보고자 하며, 찾아서 활용해 보고자 하는 의욕을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욕은, 자칫 구원을 위한 하나의 안전장치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기쁜 소식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와, 인간의 자유에 호소하는 말씀 자체의 힘에 대한 우리의 믿음 없음을 드러낼 뿐이다. 하느님의 참 영광은 현란한 어떠한 광고 매체로도, 그럴싸한 어떠한 포장 장치로도 전파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다.
■ 하느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비로소 드러나는 신비이다. 따라서 성공 여부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제자들에 의해 전파될 수 있다. 이 영광은 하느님의 생명 자체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는, 선교를 통해 사람들을 평화와 형제애로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기다리시는 증인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보다 먼저 굳은 믿음, 부활하신 분의 빛이 세상을 온통 비추고 말 것이라는 믿음부터 갖추어야 한다.
교우 여러분,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기쁨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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