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일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말씀]
■ 제1독서(신명 30,10-14)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훈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는 신명기는 실은 오랜 시간에 걸친 이스라엘 백성의 반성과 다짐의 결과이다. 이 작품은 우선 히브리 백성이 율법을 끊임없이 어겨왔음을 숨기지 않는다. 흔히 지키기 어려운 법으로 인식되어 온 이 율법은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나도 단순한 법이었다. 인간을 사랑하시면서 이웃을 사랑하도록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배여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 제2독서(코로 1,15-20)
앞서의 서간들에서 바오로는 유다교가 왜곡시켜온 율법을 거슬러 자주 논쟁을 벌여 왔으나, 오늘 서간에서는 보다 긍정적인 논지로 그리스도교의 역동적인 힘을 강조한다. 이 힘은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는 우주 만물의 기원으로부터 출발해서 이 세상 모든 흐름 안에 살아 숨 쉬는 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난 현실이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통하여 세상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분의 사랑을 본받고 펼칠 능력을 선사 받았기 때문이다.
■ 복음(루카 10,25-37)
삶의 유일한 법칙은 사랑,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제사를 올리기 전 피의 접촉으로 부정(不淨)을 두려워했던 사제와 레위 사람은 강도를 만나 반죽음 상태에 놓인 나그네를 피해서 지나가나, 흔히 ‘무법자’로 경시되던 사마리아 사람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주저함이 없이 이웃 사랑을 실천에 옮긴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이 사람은 우리 모두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형이다.
[새김]
■ 하느님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분이기에 그분의 말씀은 그 내용이 어떠하든 사랑의 말씀일 수밖에 없었다. 당신 사랑이 담긴 이 말씀이 결국 보다 전문화된 용어인 ‘율법’으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 근본정신까지 바뀔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율법의 근본정신이며, 이는 이미 신명기를 비롯한 구약성경의 저자들이 수없이 강조해 왔던 바다. 문제가 있었면 그 근본정신을 망각한 채 문자로서의 법 준수에 집착한 나머지 이 법을 부담스러운 법, 지키기 어려운 법으로 인식해 왔다는 점일 것이다.
■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율법학자의 질문 앞에서 그리스도는 잊혀 왔던 법의 정신을 기초로 응답하신다. 하느님과 이웃 사랑이 율법의 정신이고 완성이며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임을 천명하신다. 특히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예로 이것저것 따지거나 통상적인 관례에 구애받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참 이웃으로 소개하시며, 알고 있는 대로 행할 것을 명하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지식 쌓기에는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면서 실천에는 한없이 인색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며, 이웃 사랑 실천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교우 여러분, 우리 신앙인은 언제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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