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09
조회수 : 1375
마트에 갔다가 바닥에 엎드려서 울며 떼쓰는 아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난리입니다. 엄마는 “이 장난감은 너 가지고 있잖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없어. 없단 말이야.”라는 말만 반복해서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엄마가 없는 것을 있다고 거짓말하는 것일까요? 없다고 우기는 아이를 향해 누나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 말이 맞아. 너 이 장난감 분명히 가지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이 누나도 엄마와 입을 맞춰서 거짓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이가 거짓말하는 것일까요?
아이는 보통 모든 것을 자기 관점으로만 본다고 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주의가 가득한 사람은 보통 철부지 어린이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배려하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다 컸네.”
철부지 어린이 같은 어른도 참 많은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손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원에게 갑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상대방의 생각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기가 받지 못한 것, 자기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냅니다. 아직 정신적으로 어린이 철부지입니다.
상대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고 느끼는 것, 남이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황금률을 실천하기 전에 일차적으로 갖추는 우리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위선으로 가득 차서 겉으로 보이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주님의 진리를 큰 소리로 선포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온 힘을 쏟는 위선의 삶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까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세상은 나의 육신에 큰 상처를 줄 수는 있지만, 내 영혼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이제 “다 컸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다 컸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면 영적 성장에 온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성장하는 우리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안다고 증언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시선에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시선, 하느님의 평가에 온 힘을 기울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