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등산을 갔던 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처음 가는 등산이었기에 큰 기대가 있었지만, 산 정상까지의 등산은 그에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힘들다는 생각이 계속되면서 정상에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입니다. 다리도 풀려서 더는 앞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또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함께하는 친구에게 커다란 피해를 줄 것이 분명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먼저 가! 나는 틀렸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 떼어 놓고 가면 우리 마음이 좋겠니? 그리고 이 정도까지 왔으면 정상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어. 지금까지도 잘했잖아. 그러니 잠깐 쉬었다가 다시 힘내서 올라가자.”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준 친구들 덕분에 생애 첫 등산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친구와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일까요? 솔직히 긍정적으로 나를 끌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기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를 주저앉게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자기의 모습을 되돌아보십시오. 나는 내 이웃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을까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포기하고 좌절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 곁에는 역시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내 주위를 바꾸고, 결국 나를 변화시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포기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늘 희망을 간직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몇몇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어렵고 복잡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어떤 이도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다녀온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더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면서 율법의 조항들을 더 복잡하게 만들면서, 하느님 나라에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소재를 따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설명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일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깨달을 수 있는 단순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합니다. 일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 또 하느님 나라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절대로 어렵고 복잡한 곳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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