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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3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30 조회수 : 1097

어린아이가 부모를 따라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을 보았는지 소리 내 웃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 입을 막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성당에서는 웃는 것 아니야.”


지난 부활 대축일 미사 때였습니다. 미사에 오신 신자들을 향해 밝게 웃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신자들 역시 “축하합니다.”라면서 인사했지만,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부가 인사하니 마지못해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큰 슬픔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분이 다시 살아나서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깜짝 놀람과 동시에 큰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에 큰 기쁨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실감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성당에서는 웃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 암시에 걸려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 눈치를 보면서 웃어야 할 때도 웃지 못하고, 울어야 할 때도 울지 못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신앙인은 세상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의 뜻을 살피면서 그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헤로데 영주가 헤로디아의 농간에 농락되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자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기는 했지만, 의인으로 생각하면서 함부로 하지는 못했지요. 그러나 자기 생일잔치에 헤로데의 고관들과 갈릴래아의 내노라는 인사들이 초청된 자리에서 기분이 너무 좋아 헛된 맹세를 합니다. 어떤 청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맹세였습니다. 이때의 청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군주가 손님들을 초청해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것은 그들에게 자기 권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님의 소문에 죽은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하면서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나바테아 왕녀를 소박한 것이 빌미가 되어 나바테아 왕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게 되었고, 전쟁 패배로 인해 로마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서 죽게 됩니다.


세상의 눈치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를 살피면서 그 뜻에 맞게 열심히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눈치는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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