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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06 조회수 : 830

기도는 자신을 믿지 못하게 한다 

 

 

자신이 옳다는 믿음은 어떻게 갖게 될까요?

어쩌면 기억을 조작하면서까지 자신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려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는데 ‘메멘토’(2000)입니다. 

 

주인공은 누군가가 자신의 아내를 죽이려하고 자신이 아내를 구하려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립니다.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10분 후면 바로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범인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겨 넣습니다.

범인의 이름은 경찰들을 통해 알아낸 “존 지(John G.)”입니다. 

 

경찰은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를 찾아주고 복수하도록 해 줍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복수를 했다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10분만 행복했을 뿐 다시 아내를 살해한 ‘존 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으려합니다.

그게 그의 삶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돕던 경찰은 그의 단기 기억 상실증을 이용해 ‘존 지’란 이름을 가진 범죄자들을 골라

그를 살인 용의자로 믿게 만들어 그를 죽이고 자신도 한 몫 챙깁니다. 

 

물론 그도 결국엔 자신이 이용하는 주인공에 의해 죽게 되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그도 ‘존 지’란 흔한 이름에 속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단기 기억상실증은 스스로 가지려 했던 자기방어수단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죽이며 챙기는 많은 돈과 좋은 차, 그리고 심판자로서의 우월감에 계속 더

잔인한 킬러가 되어가며 더 많은 이들에게 이용을 당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그러나 그의 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 이 모든 행위들을 정당화해줍니다.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사람의 목적은 복수하려는데 있지 않고 복수를 즐기며 사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겐 진실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는 같은 장소를 반복해 오가면서도 자신이 전에 저질렀던 사건은 하나도 기억 못하고 오로지 ‘존 지’란 이름을 지닌 사람에게 정의를 실행하려고만 합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인물이 자신을 완전히 믿는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히틀러나 빈 라덴과 같은 엄청난 살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갈등이 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면 자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자신의 길을 끝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인간에게 심겨진 원죄의 영향 때문입니다.

뱀은 자기 자신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 자신은 악이요 어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만 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 부르신 것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게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 곧 ‘사탄’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더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은 다 어둠이요 악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이런 말씀을 들으면 좀 심하게 인간을 악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나타나면 우리 모든 것이 어둠이었음을 명확히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조금만이라도 보게 된다면 우리 자신들의 운영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의 스쿠르지 영감처럼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어서

그 이전의 삶으로는 다시 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살아온 삶이 온통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이젠 자신을 믿지 않고 주님의 목소리만을 찾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세 사도들을 높은 산 위로 데려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믿어왔던 사도들도 그분의 영광 앞에서는 무서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이렇게 증언해주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말씀이 그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목적을 설명해줍니다.

이젠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말고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믿지 말고 하느님을 믿으란 뜻입니다. 

 

하느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이 자신을 믿어 그것에 손을 뻗었습니다.

하느님은 십일조를 내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에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이는 아직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 단계까지는 오르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믿어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자신을 믿는 이들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이들에게 이용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을 이용하기는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좌신부 할 때 백화점에서 막 차로 나오고 있었는데 어떤 냉동 탑 차가 저를 쫓아왔습니다.

그들이 막 마지막 납품을 백화점에서 하고 나오는 중인데 남은 것들을 떨이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마침 명절이 되어 제주 옥돔 몇 박스를 아주 싼 값에 샀습니다.

그들의 말에 전혀 속이는 기색이 없었고 포장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그 상자를 열어본 결과 위에만 돔 두 마리가 있었고 속은 텅 비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전혀 속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속고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 자신만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목소리는 나와 주님을 완벽하게 구분하게 됩니다.

나는 완전한 어둠이고 그분은 그 어둠 속에서 들여오는 불빛임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참 주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면 그것은 빛에서 나온 말씀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면에서 자기 나름대로 예언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베드로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는 우리가 입을 막게 되고,

주님의 말씀의 빛 앞에서는 우리 모든 말들이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사실은 욥이 하느님 앞에서 정당함을 주장할 때 자신이 어둠이고 그분만이 빛이심을 깨닫게 된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그분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빛임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만 주님께서는 친히 당신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빛이 있고 진리가 있다고 믿는 이들은 자신을 포기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빛을 보더라도 자신의 식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그러나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은 주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모든 순간에 주님의 뜻을 여쭙고

그분이 했을 법한 일만 하며 그분이 말했을법한 말만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뜻 안에는 빛이 전혀 없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그분을 만날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다가 완전히 망한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들만이 당신 말씀의 가치를 온전히 알고 그 말씀에 온전히 의지하고 순종할 줄 아는 겸손의 상태에 때문입니다.

자신을 믿는 것이 교만입니다.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완전한 어둠임을 인정해야합니다.

이 믿음이 생기면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면서도 절대 실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어둠은 불빛이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어둠을 헤치며 헤매던 배가 등대를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그 배는 등대의 불빛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주님의 변모를 본 사람의 경지에 올랐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산에 오르면서 일어나는데, 이런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기도하면 나는 못 믿게 되고 그분은 완전히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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